본문 바로가기

스크랩

이야기│봉준호 감독의 6단계 창의력 비법

반응형

송강호가 말하는 봉준호의 힘

'괴물'때도 시나리오가 있진 않았어요.

오로지 봉준호 감독의 황당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듣고 출연을 결정한거죠.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것, 그게 봉준호의 힘인 것 같아요.

누구 생각지 못한걸 꿈꾸고 치밀하게 다듬어 오는 것 말이죠 (조선일보 2013.07.30)


그래서 이런 식이다. 이미지 한 장면이 영감이 돼 세월이 흘러 영화가 된다.


옥자│이수교차로에서 마주친 무엇

집이 이수교차로 근처인데 운전하다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죠. 고가도로가 나가면 아래 그늘지는 부분이 생기죠. 건물 6~7층 정도 높이였는데 비를 피해 구부정하게 끼여있는 동물을 발견했어요. 얼굴이 유난히 시무룩하고 근심 있는 듯하고 어쩐지 불쌍한. 실제 본 게 아니라 상상한 거죠. 그래서 '이수교차로'라는 가제로 이영화를 부르기로 했어요 (봉준호, 보그 2017.06.22)


괴물│잠실대교에 매달린 무엇

1987년 고3때 잠실대교가 보이는 아파트 13층에 살았어요.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다가 잠실대교 교각에 뭔가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게 됐어요. 입시 때문에 너무 힘들어 헛것을 봤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시설 영화감독의 꿈을 갖고 있던 난 나중에 꼭 이 기억을 영화로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어요. (주간경향 2006.07.04)


마더│오대산의 관광버스 춤

영화 '마더'의 라스트 신은 스무살 때 오대산에서 본 아줌마들의 관광버스춤에서 따왔다.

1988년 겨울 오대산에 갔어요. 입구에 고속버스 한 대가 주차돼 있는데 아주머니들이 내리지 않고 계속 춤을 추는 거예요. 너무 필을 받으신 거지. 운전기사는 밖에 나와서 망연자실 담배 피우고 있고, 정지된 차가 흔들흔들 할 정도로 격렬하게 춤을 추는 거지. 어린 마음에 충격 받았어요. '되게 추하다'생각했어요. 대자연이 펼쳐 있는데 왜 내리지 않고 춤을 추고 있을까? 어린 마음에 뭘 몰랐죠. 대신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이 돼 있었어요. '한국의 여인들, 어머니들을 찍는다면 내가 꼭 이 장면을 넣어야겠다' 머릿속에 잠복해 있었어요. 바이러스가 수면아래 잠복해 있다가 수년후에 발병하잖아요. 20년이 걸린 것이지요. (봉준호 마들연구소 강연, 2011.09.21)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일상의 이미지 한 조각씩 잠복시켜두었다가 두고두고 하나씩 끄집어내 연결시키고 상상력의 살을 붙여 작품을 만든다.

이미지 한 조각이 작품이 되기까지 오랜 숙성이 필요한데 바로 이런 과정이다.


1│ 혼자 있는 시간의 힘 

   : 아이디어의 원천은 혼자서 하는 상상.

원래 변태들이 생각이 많아요. 뭐 친구가 많지도 않고 사회성 발달하고 친구가 많으면 그 관계에서 많은 걸 충족하고 결핍이 없고 그러면 혼자 생각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죠. 그런데 저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주로 상상을 많이 해요. 학창시절 싫어하는 선생이 있으면 어떻게 완전범죄를 하지?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쓰기도 했어요. 제가 살인을 해보고 살인의 추억을 찍은 건 아니잖아요. 경험의 폭이라는 것은 누구나 한계가 있고 그래서 상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봉준호,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2013.07.29)


2│ 관찰의 힘

   : 그리고 그 상상력의 밑천은 변태적인 관찰.

어떤 문제나 공간을 변태적으로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면 다양한 생각이 들게 마련이죠.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아요. 변태는 내게 곧 창의적인 사람들 뜻하는 단어에요. 변태들이 좀 다르죠.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해요. 그렇다고 제가 옷장에 채찍이 있는 변태는 아니고 머릿속에만 있어요. 예를 들면 어릴 때 잠실 아파트에 살았죠. 바퀴벌레가 많이 나오기로 악명이 높은 아파트였어요. 사람들은 휴지나 책으로 쳐서 잡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죠. 벌레 몸이 터지니까. 그래서 유리병으로 덮어 변기에 탈탈 털어서 버렸어요. 그런데 가끔은 저도 모르게 그 유리병 속의 바퀴벌레를 보고 있는 거죠. '어떻게 이토록 끔찍한 피조물이 생겼을까, 와!' 이러면서 (봉준호, tvN 2013.07.29)


3│ 기록의 힘 

   : 관찰과 상상은 기록으로 남긴다.

예를 들어 '플란다스의 개'에서 남편이 가게까지 거리가 100m임을 증명하겠다며 두루마리 휴지를 굴리는 장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장면은 조감독 때 힘들게 살면서 했던 상상이에요. 돈 없이 지내보면 알겠지만 음료수 용량이 120ml가 이게 맞는지 누가 알아, 누가 재봤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휴지도 100m라고 쓰여 있는데 진짜 100m 맞아? 운동장 100m 트랙 위에 쫙 펴볼까? 이런 상상도 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런 건 내가 봐도 너무 쪼잔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웃기니까 그런 걸 공책에 적게 되죠. 그러다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요. (무비스트 2008.05.27)


4│연결의 힘

   : 점으로 잠복돼 있던 그의 상상과 관찰, 기록은 연결이 되면서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괴물'은 고3때 잠실대교에 매달려있던 무언가에 대한 이미지가 '맥팔랜드 사건'이라는 실화와 연결되면서 영화로 탄생했다. 맥팔랜드 사건은 2000년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사건이다.

그때 이 기억을 영화로 꼭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가 맥팔랜드 사건이 터졌다. 너무나 완벽한 실제 사건이 생긴 것이다. 고질라가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면서 만들어지듯 내 영화에도 안성맞춤의 사건이 터졌고 그것이 이 영화의 오프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봉준호,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2013.07.29)

괴물이 아이를 유괴하는 설정은 펠리컨에 대해 잠복된 이미지와 연결된다.

보통 괴물은 잡아먹거나 해치는데 이 영화는 희생자를 운반하잖아요? 납치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이 영화의 플롯을 다른 괴수 영화와 완전히 다르게 만든 거였죠. 괴물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유괴 영화예요. 유괴범이 괴물인 거죠. 그런 플롯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냐하면 동물다큐를 보다 얻은 거예요. 펠리컨이 나오더라고요. 펠리컨이 물고기를 운반해요. 그게 '괴물;에 적용된 거죠. 거기서 플롯이 새끼 쳐서 나간 거 아니겠어요? 여러분도 하루 수백 번 찬스가 있을 거예요. 자극과 영감은 도처에 널려잇어요 어떻게 캐치하느냐의 문제이죠. (한국영화아카데미 특강 2013.08.19)


5│ 이질적 요소끼리의 연결

   : 특히 이질적인 것들의 연결이 중요하다. 안 어울리는 것들끼리 짝지어놓고 충돌시키는 것.

'살인의 추억'은 농촌 스릴러였고 '괴물'은 한갈에서 백주대낮에 괴물 나오는 얘기였으며 '마더'는 국민 엄마 김혜자와 살인, 모성, 범죄를 한 곳에 욱여넣었다.

나는 김혜자 선생님이 싸이코, 미친여자 같았다. 광고에서 '그래 이 맛이야' 할 때마다 '국민엄마지만 저분은 무슨 광기가 있다' 그런 느낌 받은 게 마더의 출발이란 말이죠. 위대한 배우, 국민엄마, 하지만 내가 보기엔 미친 사람, 그 분을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야겟는데 '엄마가 미친년이다.' 라는 스토리죠. 숭고한 엄마와 야수 같은 엄마, 송고한 사랑인데 어느 선을 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광기가 되는 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2014.09.30)


6│ 실현은 리얼하게

   : 상상하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연결한 뒤 실행은 땅에 착 달라붙어 리얼하게.

리얼리즘을 추구하진 않지만 리얼리티는 중시한다. 특히 '괴물'은 가장 비현실적인 괴수 영화이지만 봉준호가 "가장 다큐처럼 찍고 싶었던"영화이다. 그래서 나온 장면들, 첫번째는 57분 교통정보. 괴물이 한강에 출현해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을 봉준호는 '버스 안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앵글로 잡았다.우리가 버스타고 한강다리 건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앵글이다. 버스 라디오에서는 57분 교통정보가 흘러나온다. 두번째, 합동 장례식 장면

집단 장례식을 한다는 건 사람이 떼로 죽는다는 얘기니까 그것만으로도 공포스러운 일인데 거기서도 누군가가 '2487차 빼'라고 막 소리 지르고, 사실 우리가 매일 같이 겪는 일이잖아요. 웃기면서도 되게 슬프고 공포스러운 순간. 지극히 사실적인, 한국적인 리얼리티의 소산이죠. (봉준호,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2006.10.18)


봉준호식 창의성을 정리하면 이렇다.

일상에서 주운 이미지 한 조가각을 주머니에 잘 찔러 넣고는 계속 만지작 거리다 이때다 싶으면 바로 꺼내 연결시킨다. 주운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내 것인 것처럼 말이다. 떄로는 그 한 조각이 주머니에서 썩는 것이 아까워서 끄집어내야 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제가 좀 소유욕이 강해요. 머릿속에서 이미지나 사운드가 떠오르면 반드시 그것을 찍어서 손에 넣고 싶다. 화면에 넣고 싶다는 집착이 생기거든요. 그 시점이 올 때까지는 계속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죠. (봉준호, 한국영화아카데미 특강)

'마더'의 마지막 장면으로 대학생 때 오대산 갔을 때 이미지가 이미 머릿속에 있엇죠. 이 장면은 정말 찍은 뒤 내 종양덩어리를 툭 바닥에 던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었어요. 찍고 돌아올 때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었요. 


꾸준하게 오로지 영화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본인의 창의력을 표출할 수 있는 최종 아웃풋인 영화가 있기에 봉준호 감독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많이 기록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되게 해줘야 그 상상은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본 관음자는 평소 일기를 쓰고 낙서를 많이 하고 수집욕까지 있어 어느 한 곳에 꽂히면 자료를 많이 모아보려고 한다. 좀 변태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모아온 것들이 빛?을 보고 있지 않다. 창작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위 6가지 단계에 비교해 보면 첫번째로 혼자 있는 시간은 망상과 독처 그리고 낙서로 보내온 시간이 많았다. 요즘은 목적 의식이 없어서 그런지 멍때리거나 별 소득없는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차라리 망상을 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예전이 더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번째인 관찰, 관음자는 관음한다는 닉네임 이상한 디테일에 꽂히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만년필에 꽂혔다고 하면 그 동작원리 등에 대해서 공부한다. 그와 관련된 브랜드 등에는 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아마도 만들거나 그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보니 이러한 습성이 생긴 듯 하다. 세번째 기록의 힘. 이 부분은 반성을 많이 해야 좋은 생각도 옆에 기록할 무언가가 없으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그냥 머릿속에서 증발 된다. 나중에 더듬더듬 찾아보려해도 무언갈 생각했다는 느낌만 있을 뿐 무언가가 없다. 작은 수첩이라도 들고 다니며 자유롭게 기록해야겠다. 아무래도 스마트폰 보다는 수첩이 좋다. 더 어릴적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이런 저런 요소들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쉽지도 않았고 성장하면서 상상력에 에너지를 더 쏟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돌아보면 씁쓸한 부분이다. 다섯번째는 이질적인 것의 연결. 이것은 건축에 관심이 많은 본 관음자가 자주 상상하는 것이다. 거실이 꼭 거실이어야 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실현은 리얼하게. 실현할 수 있는 컨텐츠에 집중해야 되겠다. 그러면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그 표현수단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더 즐겁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출처;

TTimes / 영화 '괴물' 스틸컷 / 중앙포토 /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 나무위키 / YouTube / 


덧;

-직썰 :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7가지 방법 
-살인의 추억 삭제 장면


반응형